외전 - 하이눈 닌자 노마드

4부 2021. 4. 18. 16:05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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사무라이 닌자 슬레이어 - 하이눈, 닌자, 노마드 (前) - 닌자 슬레이어 갤러리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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디시인사이드 'NJSK'님 번역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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SAMURAI NINJA SLAYER

 

【하이눈, 닌자, 노마드】(전편)

 

 

정오. 닌자. 이방인.

 

 

도표 건너편의 송림에서 길가에 쓰러진 낙오무사를 발견한 조닌(町人) 유후코는 그에게 가지고 있던 주먹밥을 건네준 뒤 짚을 씌워 주었다.

"해가 진 후 돌아올테니, 그때까지 버텨 주십시오"라 당부한 뒤 그녀는 집으로 향했다.

 

 

그녀의 자택이 있는 여인숙 마을 오미노로시는 숲에서 걸어서 수분 정도, 엎드리면 코 닿을 거리였다. 여기까지 와서 유후코는 처음으로 자신의 행동이 두려워졌다.

낙오무사를 숨겨준 것이 알려지면 이는 곧 죽을 죄이니, 이것은 목숨 아까운 줄 모르는 행위 그 자체였다. 그러나, 그녀 자신이 그를 내버려두는 것을 허락하지 못했다.

 

 

오미노로시의 입구엔 노인이 서서 앞이 보이는지 어떤지도 알 수 없는 희고 탁한 눈으로, 평소처럼 그녀의 가슴팍 등을 유심히 관찰하고 있었다.

유후코는 양손을 땀으로 축축히 적시면서, 서쪽의 직인거리로 향했다. 도중, 다시 의심하는 듯한 시선이 하나 둘씩 주막이나 장옥의 음영에서 시선이 던져졌다.

'괜찮다', '전부 평소 대로다'라고 자신을 타이르며 유후코는 자신을 타이르며 평상심을 유지했다.

 

 

과거 나그네들로 붐빈 이 대로도 지금은 한산해져 마른 톳이 불어오는 바람에 가루처럼 굴러갈 뿐이다. 여인숙 마을 오미노로시의 공기는 무겁게 침체되어있었다.

은광이 5년 전에 고갈되고, 거기에 새로운 여인숙이 해안에 열리면서 지금은 방문하는 자들이 없었다. 그렇다고 나가는 자들이 있는 것도 아니였다. 남은 주민은 삼백명 남짓이라.

 

 

어째서 그들이 마을을 버리고 이주하려 하지 않는가 하니 그것은 지방의 다이칸이 은광의 재개발을 검토하기 때문이였다.

지금을 견디고 머무르면 언젠가 다시 이 마을이 부흥했을 때 고생 않고 큰 돈을 쥘수 있으리라, 그러나 그것은 내년인가 수년 후인가, 아니면 영원히 오지 않는 것인가. 직업을 잃은 상공인들은 다이칸의 명에 따라 조악한 땅에 양귀비를 키워 겨우 입에 풀칠을 할 뿐이라.

 

 

유후코는 집에 돌아와선 한숨을 쉰뒤, 벽난로 앞에 정좌하였다. 선향을 피우고, 불단과 같이 세워져 있는 위패를 향해 합장하였다.

 

 

◆◆◆◆◆◆◆◆

 

 

해질녘. 해골같은 만월 아래. 유후코는 제등도 챙기지 않고 낙오무사가 있는 곳으로 돌아왔다, 마을 거리에 인기척은 없었다. 방울벌레의 울음소리만이 울리고 있었다. 그 낙오무사는 아직 거기에 있는 걸까. 아직 살아있는 걸까. 그녀는 도표에 도착하여 송림의 어둠을 들여다보았다.

 

 

"사무라이님, 이제 괜찮습니다" 유후코의 부름에 짚 속에서 신음소리가 응답했다. 부슬부슬하며 짚이 떨어지는 소리가 울렸다.

"으음...." 낙오무사는 이 빠진 칼을 지면에 꽂으며 그것을 주축으로 일어섰다.

 

 

쌕쌕거리며 숨을 헐떡이고, 고통으로 얼굴을 일그러뜨리면서. "송구하오" 그는 다리를 끌면서 유후코가 있는 곳까지 걸었다.

순간, 낙오무사의 양눈이 피처럼 붉에 빛나는 듯 하여, 유후코는 몸서리쳤다. 그러나 이는 착각인 듯 하였다.

 

 

달빛에 비춰진 낙오무사의 시퍼런 얼굴은 역시 고지식한 사무라이들의 그것이되, 그럼에도 불구하고, 무언가 한가지 신념을 향해 물 불 가리지않고 돌진하는 듯한 위험한 기운도 느껴졌다, 그것은 어딘가, 자신이 여읜 지아비와 비슷한 분위기를 띄었다. 유후코는 고개를 살짝 저었다. 

 

 

투구는 없다. 피로 굳은 단발머리. 얼굴의 절반에 핏자국. 다박수염도 없다. 갑옷은 흠집 투성이. 발에는 짚신. 낮설은 형태의 깃발. 어느 영지 출신인지도 알 수 없다.

먼 곳에서 온 거겠지. "집까지 안내하겠습니다, 약과 잠자리가 있습니다"라 유후코가 다부지게 말하니, 그녀는 이미 결심한지 오래였다. 

낙오무사는 잠시 침묵한 후, 다시 한번 감사를 표했다. "송구하오" 그는 의식이 몽롱한 듯 하여 발걸음이 불안정하였다. 이 침묵에도 과연 어떤 의미가 있는지 의심스러웠다.

 

 

유후코는 위험을 감수하고 어깨를 거들어 걸었다. 낙오무사의 몸은 뜨거운 열을 띄었고, 철과 유황의 냄새를 풍겼다.

언제나 처럼, 여인숙 마을의 입구에 인기척은 없고, 중앙의 쇼야(庄屋;촌장)의 집 주변의 몇몇 주막에서 취객들의 웃음소리가 들릴 뿐이였다.

 

 

"나무아미타불, 나무아미타불..."

유후코는 작은 목소리로 기도하면서, 어둠 속을 걸어 직인 거리로 향했다, 다행히도 길가의 삼련지장 이외엔 그녀를 지켜보는 자는 없었다,

유후코는 꼼꼼히 문단속을 한 뒤, 차를 끓이기 위해 벽난로에 불을 지펴 물을 데폈다.

 

 

낙오무사는 기둥에 기대어 앉아 독한 술을 청했다. 유후코는 창고에서 '검은 호랑이'라 써진 저렴한 독주를 꺼내어 잔에 따랐다. 

낙오무사는 이를 마신뒤 잠시 고개를 떨군 채로 있었지만, 이내 결심한 듯이 고개를 끄덕이곤 칼집을 물고 어깨에 파고 든 화살을 잡았다. 

뽑아 내려는 것이리라. 마취며 소독도 없이.

 

 

"기다려 주십시오. 전 의사는 아니옵니다만 진통제가 될 만한 게 있습니다." 유후코는 벽에 놓여진 높다란 목재 선반에서 양귀비를 꺼내 약연으로 빻기 시작했다.

"귀하는, 약사이외까." "예, 곧 완성될 테니, 그걸 약에 섞어 마셔 주시길." 낙오무사는 잠시동안 대답없이 유후코를 지켜봤다. 그리고 양손을 무릎위에 두고 끄덕였다. "송구하오"

 

 

낙오무사는 모르핀 차를 마셨고, 거무하에 어깨의 화살을 다시 잡았다. 유후코는 미간에 주름살을 짓고, 눈을 감았다. '찌직'하는 소리가 났다. 남자는 뽑은 화살을 벽난로의 땔감으로

삼았다. 그 후 등 뒤로 팔을 굽혔다. 등쪽에도 화살이 꽂혀있던 걸까, 그렇다면 그건 근원이 보이지 않을 만큼 짧게 부러졌다는 걸까.

 

 

유후코는 실눈을 떴다. 낙오무사는 작게 신음하며, 등 뒤에서 검은 덩어리를 뽑아냈다. 

그것은 별모양의 검은 철덩어리였다. 소량의 피가 마루에 튀었다. 낙오무사는 뽑아낸 그것을 벽난로 속으로 던졌다.

 

 

유후코는 제 눈을 의심했다. 그것은 수리켄, 닌자가 던진다고 전해지는 전설적 투척무기였다. 

그러나, 이미 닌자도 수리켄도 존재할 리 없는 것들이다. 멀고, 먼 신화시대의 유물일 터이다.

 

 

"사무라이님, 이것은..." 그렇게 물어보면서도 유후코의 시선은 낙오무사가 아닌 수리켄을 향해 멈춰있었다. 그 괴사스러운 형태가 유후코를 매료하였다.

아마 이 세상에 존재해선 안될 물건이 지금 눈 앞에 있는 것이다. 유후코는 붓다(佛陀)나 조상에게 면목이 없음을 느끼면서도, 공포가 아닌 배덕감에 매료당하여, 잠시도 수리켄에게서 눈을 떼지 못하고, 꿀꺽하고 침을 삼켰다.

 

 

더욱이 믿기 힘든 일이 일어났다. 불로 달구어진 수리켄의 표면에 일순 보이지 않는 도화선이 지나간 것 처럼, 사악한 닭 모양의 문장이 붉게 떠오르나 싶더니, 작은 폭발을 일으키며 연기를 발한 것이다, 그 뒤에는 수리켄 형상의 검은 탄더미가 남았다. 닭의 문장은 어디에도 보이지 않았다.

대체 무엇이 일어난 것인지, 유후코에게는 도무지 짐작이 가지 않았다. 

 

 

(((독 부류의 짓수였나))) 지옥 밑바닥에서 울리는 듯한 목소리가 낙오무사 쪽에서 들려왔다. "사무라이님, 지금 무언가 말씀을...." 유후코가 벽난로에서 눈을 돌려 물었으나, 낙오무사는 이미 잠에 빠져 있었다.

 

 

◆◆◆◆◆◆◆◆

 

 

낙오무사는 갑옷도 벗지 않고, 죽은 듯이 이틀 내내 잠들어 있었다. 그리고 사흘째의 밤에 눈을 떴다. 머리와 한쪽 눈에는 목면 붕대가 둘러져 있었다.

유후코가 미소지으며 이름을 물으니 낙오무사는 '키루지마'라 답하였다. 그러나 그 이상은 무엇도 이야기하려고 하지 않았다. 그리고, 갑옷을 벗으려고도 하지 않았다.

키루지마에게 식사를 대접한 뒤, 유후코는 벽난로를 사이에 두고 그와 마주앉았다. 잠시동안의 침묵이 흐르고, 유후코가 먼저 입을 떼어 물었다.

 

 

"상처가 나으셨다니 다행입니다. 하지만, 어째서 갑옷을 벗지 않으시는 겁니까?"

 "...소인이 누구인가를, 놈들에게 깨닫게 하기 위해서이오."

 

 

키루지마는 조용히, 하지만 확고한 목소리로 말했다. 그 눈동자 깊숙히 광기의 불꽃이 스멀거렸다. 

'놈들' 이 무엇을 가리키는 지는 물을 필요도 없으리라, 이는 추격자들을 뜻하는 것이라 여겨 유후코는 그 이상 묻지 않았다.

 

 

키루지마는 차를 마신 뒤, 술에 절인 보존 스시를 먹으면서 이 여인숙 마을, 그리고 유후코에 대해서 몇가지 물었다. 

몇번의 질문 후, 돌연히 키루지마가 눈빛을 바꾸더니 품에서 피에 젖은 두루마기를 꺼내어, 거기에 써진 문자를 눈으로 흝었다. 

 

 

"...아마, 은광은 두번 다신 열리지 않을것이오" 키루지마는 전했다.

"또한 양귀비는, 일부 영토에선 이미 금령이 내려졌소. 순도가 높은 가루약의 경우 말단가격이 코베인(小判) 한닢, 또는 마구로 한마리에도 필적하오, 닌자와 손을 잡은 다이칸은, 허황된 희망을 내세워서 이 마을을 고립시켜, 영민들을 평생 양귀비 재배에 매달아 놓을 속셈이요 ..."

 

 

"양귀비에 대해서는 모르겠습니다, 하지만 광산에 대해선,  어렴풋이 의심하던 자들도 있었습니다."

유후코는 불단을 잠시 바라본뒤, 시선을 떨구었다. "지금은 다들, 세상을 떴습니다만..."

키루지마는 두루마기를 읽어나가면서 물었다. "다이칸의 전령으로, 츠네오 쿠로시라는 사무라이가 올 거요"

 

 

"예, 그렇습니다, 츠네오=상은 매월 초순에 무수한 아시가루 부대를 이끌고 세금 징수에 나서, 쇼야의 집에서 여색을 다한 후, 쌀가마니와 양귀비를 큰 짐수레에 가득 채워 돌아간다고 듣습니다." 유후코는 날짜를 떠올렸다. 바로 내일이 다음 초순이였다.

 

 

"놈은 사악한 닌자요." 유후코는 눈을 크게 떴다. 닌자. 삼일 전의 기사가 뇌리에 스쳤다. 

어째서 잊은 걸까. 수리켄이고 무엇이고 있을 수 없는 것들이라고 유후코는 그것들을 안중 밖에 두었었다.

키루지마는 이어서 말했다. "그리고 소인은, 닌자를 죽이는 자이외다"

 

 

"닌자를...죽인다 하셨습니까?" "놈들에게 처자식과 하인들을 몰살당하고, 소인은 영토에서 추방되었소" 키루지마는 이를 악물면서, 정중하게 말하였다.

 

 

그 말은 칼처럼 예리하게 유후코의 심장을 도려냈다. 그녀는 간신히 이해했다. 이 낙오무사는 미쳐버린 것이라고.

처자식을 잃고, 영토에서 추방당해 낙오무사가 되어, 거기다 갑옷이며 깃발도 버리지 않고 변두리를 떠도는 것은 제정신으로 견딜 만한 일이 아니다,

이 남자는 미친 것이다. 닌자같은 건 없다, 닌자를 죽이는 자도 없다, 모든 건 허황된 이야기다. 여기 있는건, 한명의 미쳐버린 낙오무사인 것이다. 

 

 

모든 사실을 납득한 유후코의 눈물이 뺨을 타고 흘렀다. "닌자따윈 없사옵니다" "소인 역시, 부정한 닌자요." 

키루지마는 고개를 숙이며 분한 듯이 말했다. "그리고 망자라오, 죽은 처자들의 복수를 위해 대지를 떠도는, 저주스러운 망자이외다." 

목숨을 구해준 유후코에게 대하여, 다시 사지에 뛰어들려고 하고 있는 자신의 무례를 사죄하려는 듯도 하였다.

 

 

"사무라이님, 당신이 닌자이든 그렇지 않든, 다이칸의 사병단에 홀로 맞서는 것은 광행이옵니다. 이길 도리가 없습니다. 부디 그만 두십시오" 유후코가 말했다.

허나 그것을 제지해서 어쩐다는 것인가, 자신은 어째서 이 남자를 도운 것인가. 시야가 일그러지며, 다시 부조리에 대한 눈물이 유후코의 뺨에 흘렀다. 이 남자는 미쳤다. 허나 그는 진심이다.

 

 

"그러나 낙오무사의 신분으로 이 마을에 계시는 것도 위험하옵니다, 집집마다의 감시하는 눈들과 침체된 분위기에 해를 입어 사무라이님의 마음에 불온한 생각들이 싹틀 것입니다. 적어도, 안개가 짙은 자비로운 이날 밤에 숨어 어느 먼 곳까지 몸을 피하시는 것이.."

 

 

"이해하오. 귀하에게 폐를 끼치고 싶지는 않소, 허나 입은 은혜가 있소." 키루지마는 품에서 검은 주머니를 꺼내어, 유후코에게 건넸다.

그 안에는 코베인 십수닢이 들어 있었다. 그것은 키루지마의 소지금 전부였으리라. 대부분이 피가 스며들어있었다.

 

 

"받을 수 없사옵니다." "허나 그대는, 이 이방인을 구해주었소"

"약사로써, 그냥 지나칠 수 없었습니다" "소인은 이 정도의 사례밖에 할 수 없소."

"쓸 방도도 없사옵니다" "이 마을이 침체되어 있다면 다른 곳으로 이주하면 될 것이요, 그 노잣돈으로 쓰기엔 층분할 것이외다."

 

 

...당신께서 어딘가 멀리까지 데려가 주시겠습니까, 라고 말하려다, 유후코는 고개를 저었다.

 

 

"이 마을에는 지아비와 아이의 묘가 있사옵고, 약사가 부족하옵니다. 이 마을에서 뜰 심사 역시 없습니다."

"...이해하오. 그러나 소인 역시 그것들을 쓸 방도도, 여비의 심려도 없소, 부디 받아주셨으면 하외다. 그럼, 이만 실례하겠소."

키루지마는 주머니를 놔둔 채, 1분 가까이 머리를 깊이 숙였다.

 

 

"예"라고 유후코가 전하니, 키루지마는 그제서야 고개를 들어 이 빠진 칼을 매고 뜰 준비를 하였다.

유후코는 일어서서 낙오무사의 머리에 둘러진 목면 붕대를 다시 매어 주었다. 적어도 멀리까지 도망갈 수 있길 빌면서.

 

 

문이 닫혔다. 폐광이 있는 산의 고개에서, 들개의 적적한 울음소리가 들려왔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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정오, 닌자, 이방인.

오미노로시의 쇼야의 집의 지붕 밑에 숨어있던 낙오무사가 모습을 드러내고, 세 번 옆돌기를 행하여 번개처럼 대로에 내려와 아시가루 부대의 행렬을 막았다.

 

 

다이칸의 전령을 맞이하기 위해 도게자하고 있던 사내들은, 앗 하고 숨을 들이쉬었다. 낙오무사다. 거기에 이 부대의 행렬을 막아서다니. 제정신으로 할 짓이 아니다.

이를 맞이한 십수명의 상공인들은 몸서리치며 집에 돌아가 문을 단단히 잠근 뒤, 일촌정도의 틈새를 열어놓았다.

 

 

부르르르르, 말들이 거친 숨을 내쉬었다. 행렬은 멈췄다. 선두에는 요쓰야노쿠니의 다이칸의 깃발을 등에 진 창병 아시가루가 네명. 이어서 말에 탄 아시가루가 한명.

그 뒤에는 텅 빈 짐수레를 끄는 아시가루가 두명. 모두 검게 칠해진 갑옷으로 몸을 감싸고 있었다. 창의 끝날이 정오의 햇빛에 비춰져 반짝였다.

 

 

"츠, 츠네오=상" "어, 어떻게 합니까...!" 아시가루들의 곤혹한 표정으로 사무라이를 올려다 보며 대답을 바랬다.

"재미있군, 내가 상대하마" 말에 탄 사무라이는 아시가루들을 물렸다. 그리고 위압적으로 말을 몇 보 앞으로 전진시켜, "네놈, 어디서 온 낙오무사냐?"라 추궁했다.

 

 

"도-모, 처음 뵙겠소, 츠네오=상" 낙오무사는 머리 숙여 인사했다. 가루섞인 듯한 바람이 대로에 불었다. "...아니, 툼스톤=상. 닌자 슬레이어이외다."

"도-모. 네놈, 어째서, 그 이름을 알고있지?" 말 위에 타고있는 툼스톤이라 불린 사무라이는, 미간을 찌푸렸다.

 

 

"그대를 죽일 것이므로." 키루지마는 칼집에서 칼을 뽑아 수평으로 취하였다. 오싹오싹하며 칼이 울었다. 

한낮의 햇빛을 머금고, 칼은 낙오무사의 얼굴에 그림자를 내렸다. 새빨간 두 눈이 혁혁하게 빛났다. 

'忍' '殺'라 새겨진 괴이한 강철의 멘포가 어디선가 나타나 낙오무사의 입둘레를 감쌌다. 갑옷 밑에 검붉은 누더기가 드리워져. 지옥불처럼 흔들렸다. "그 목, 받아가리라."

 

 

"건방지군" 사무라이는 코웃음 치며 오른팔을 좌에서 우로 가볍게 휘둘렀다. 

인식할 수 없을 만큼의 속도로 네 장의 수리켄이 투척되었다. 수리켄의 투척속도는 대강 시속 이백 킬로메타. 범인의 눈으로는 쫒을 수 없으리라.

하지만 키루지마에게는 보이는 것이다. 그는 눈을 크게 뜨고 이를 악물었다. "이얏-!" 칼의 잔광이 허공에 제트 자의 궤적을 그리며, 네 번 불꽃이 튀었다.

 

 

수리켄을 튕기며 생긴 엄청난 반동으로 키루지마의 몸은 뒷쪽으로 몇 보 밀려났다. 

강철로 된 별들은 전부 튕겨나가, 두 장은 지면에 깊이 박히고, 한 장은 숙소의 벽을 뜷고 아비규환을 만들었고, 처음 튕겨나간 나머지 한 장은 투척자를 향해 날아갔다. 

키루지마는 투척자를 노리고 수리켄을 역으로 튕겨보낸 것이다. 

 

 

이는 처음 투척되었을때보다도 더욱 가속하여, 지금은 시속 육백육십하고도 육킬로메타에 이르렀다. 믿기 힘든 와자마에였다.

이에 대하여 말에 탄 사무라이는 살짝 몸을 틀지조차 않았다. 튕겨나간 수리켄의 궤도가 보이지 않았기 때문이 아니요, 이는 자신의 몸에 닿지 않는 것을 알기 때문이다.

 

 

'흉'하고 소리가 울리며, 수리켄이 사무라이의 투구에 꽃혀 그것을 후방으로 날려보냈다.

투구 아래에 숨겨져 있던건, 검은 닌자 두건과 해골문양의 검은 멘포, 그리고 희옇게 발광하는 인외의 눈동자.

 

 

사무라이의 정체는 닌자였다. 툼스톤은 만족스러운 듯 고개를 끄덕이며 말에서 내려, 검은빛의 칼을 뽑으며 아이사츠에 회답했다. 

"좋다. 그럼 닌자 슬레이어=상인지 하는 아무개놈, 나의 가라테로 직접 베어 죽여주마."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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SAMURAI NINJA SLAYER

【하이눈, 닌자, 노마드】(중편)

 

 

툼스톤은 검은 칼을 높이 치켜들어 다다미 넉장의 거리에서 닌자 슬레이어를 위압했다. 닌자 슬레이어는 위축되지 않고 베어 들었다, 닌자의 속도로.

그리고 튕겨져 나갔다. 예리한 금속의 충돌음이 대로에 울려퍼졌다. 두번, 세번, 네번. 역시나 닌자 슬레이어는 튕겨나가, 방어 중의 발차기를 역으로 받고 땅에 뒹굴다 이윽고 날아오는 참격을 두 번 뒤돌아 피했다.

 

 

파고 들 수 없다. 언뜻 보기에 빈틈 투성이처럼 보이나, 쳐 들어갈 틈이 없다. 그렇다. 이는 '묘석의 자세'라 불리는 견고한 고대 이아이도의 와자마에였다.

태양을 등진 툼스톤의 신체는 흡사 우뚝 솟은 난공불략의 검은 탑과 같았다. 툼스톤이 발하는 희연 안광이, 낙오무사 키루지마 타카유키를 내려보았다.

"어찌 된거냐, 닌자 슬레이어=상! 덤벼 보거라!"

 

 

닌자 슬레이어는 자세를 바로잡아 적을 노려봤다. 적은 필시 이백년은 묵은 리얼 닌자, 쌓아온 가라테와 검의 와자마에의 격차는 역연하리라.

그리고, 그것 뿐만이 아니다. 적의 검은 칼은 이상할 만큼의 질량을 띄고 있었다.

 

 

그 측면에는 주술적인 가타가나 문자가 빽빽히 새겨져 있어 불길한 흑요석제 불단과 같은 위용을 풍겼다.

저것은 무엇인가. 눈을 깜빡이는 일순간, 키루지마의 양눈이 붉게 발광했다, 그 일순 동안 적의 칼에서 피어오른 먹빛의 연기를 감지했다. 범인의 눈으론 감지할 수 없는 닌자의 기척을.

 

 

(((저것은 그냥 검이 아니다 키루지마여, 칼날에 새겨진 룬 가타카나를 보아라. 이는 고대 닌자의 짓수가 담겨있으니. 자유자재로 그 무게를 바꾸는 게다.)))

키루지마의 뇌리에 경고하는 목소리가 울렸다. (((지금은 필시 본래의 수십배의 무게가 가해져 있으니. 그대가 몇번을 파고들어도 수비를 무너뜨리지 못하는 게지.)))

(((그렇다면 어떻게 하나, 저 묘석의 자세를 무너뜨리지 않으면 이길 도리는 없다))) (((...증오가 부족한 게다. 더욱 증오를 불태워라, 키루지마여)))

 

 

"닌자에게...죽음을...!"

 

 

키루지마는 수리켄을 튕겨낸 때처럼, 어긋 안개자세(※)를 취하여 적을 요격하려 하였다.

다시 말해, 양손으로 짜내듯이 칼자루를 쥐어 중단세를 취한 뒤, 팔을 교차하여 칼날을 지면과 수평으로 취하였다.

깊이 숨을 내쉬면서, 허리는 낮게, 움츠려진 용수철처럼 힘을 모았다. 아직 완전히 치유되지 않은 왼쪽 정강이와 등의 상처가 찢어져 피가 배어나왔다. 그러나 살의에 넘치는 키루지마의 눈빛은 조금도 변하지 않았다.

[※ 안개자세 : 검도의 오행의 겨눔세(五行の構え) 중 물의 겨눔세에 속하는 두 팔을 교차시켜 도검을 입 부근에서 땅과 수직으로 겨누는 자세]

 

 

"왜 그러나, 날 즐겁게 해다오, 닌자 슬레이어=상! 덤비지 않겠다면 이쪽에서 가겠다!" 두 닌자는 서로 노려보면서, 서서히, 서서히 한발씩 원을 그리며 걸었다.

짙은 터키색 하늘 아래, 갈라진 땅에 모래먼지가 피어오르고, 메마른 양귀비가 양자의 사이를 굴러갔다.

건조한 정오의 햇빛이 키루지마의 칼을 예리하게 빛내었다. 툼스톤은 곧장 베어들진 않았다. 그는 상대를 주시하고 호흡을 읽으면서, 이 살육의 순간을 즐기고 있었다.

 

 

대로에 나와 있던 상공인들은 모두 긴 소매로 시선을 감추며, 아이와 아내의 손을 끌고 집 안으로 도피했다. 칼을 뽑은 사무라이를 직시하는 것은 불경죄에 해당했기 때문이다.

요쓰야노쿠니의 아시가루 부대는 그 자리에 정좌하여, 마른 침을 삼키면서 이 살육전의 동향을 지켜보았다. 귀향할 때의 짐수레엔 양귀비는 쌀 가마니 뿐만 아니라, 저 낙오무사의 시체가 더해져 한층 무거워지리라.

 

 

폐광 쪽에서 메마른 가도에 흉, 하고 적적하게 바람이 불었다.

"이얏-!" 툼스톤이 마침에 베어들었다. 찰나의 순간 검은 칼에 몇십배의 무게가 가해져, 닌자의 양팔에 근육이 올라 퍼졌다.

칼은 일직선으로 내리쳐져 닌자 슬레이어는 옆으로 뛰어 이를 간발의 차로 피했다.

 

 

예사 칼잡이라면 허공을 벤 것으로 인해 큰 빈틈을 보이고 말았을 것이다. 당연히 키루지마도 그것을 노렸다.

허나 툼스톤은 칼을 그대로 지면에 내리찍은 것이다. 검은 칼은 흡사 나무망치처럼 튀어올랐다.

굉음이 울리고 발밑이 드르륵 흔들렸다. 이 진동으로 인해 닌자 슬레이어는 돌입할 호기를 얻기는 커녕 반격으로 정강이를 얇게 베이고 말았다.

 

 

그대로 두 닌자는 격렬하게 칼을 맞부딫히며 접전하였다.

툼스톤의 칼은 자유자재로 그 무게를 바꾸어, 어느 때엔 오니의 금방망이처럼 무겁게, 어느 때엔 수은처럼 가볍게 움직였다.

이 변환자재의 검술에 농락당하여 키루지마는 갑옷 위에서 수 곳을 얇게 베여 그때마다 안개처럼 피를 뿜어냈다.

 

 

더욱이 키루지마는 장딴지를 베였다. 허나 이것은 결사의 일격을 발하기 위함이였다. 칼끝이 툼스톤의 옆구리를 훑고 지나가 피가 튀었다.

"이얏-!" "으음-?!" 기회는 왔다. 닌자 슬레이어는 묘석의 자세를 무너뜨리기 위해 다리를 노려 횡방향의 회전참격을 가했다. "이야아아아----앗!"

 

 

허나, 저지되었다. 툼스톤이 지면에 박아놓은 칼로 인해 막히고 만 것이다.

"으음!" 그야말로 금강석으로 된 묘비에 부딫친 것 같은 충격과 저림이 키루지마의 팔을 타고 흘렀다.

"부상을 입었군, 닌자 슬레이어=상! 그 발로는 반동을 버티지 못할 테지!"

 

 

최대한의 닌자 근력이 깃든 참격이, 일촌의 두께도 못 차는 칼 한자루에 막히다니.

닌자 슬레이어의 자세가 무너진 한편으로 툼스톤은 모든 수족의 힘을 일격의 가라테를 위한 예비동작에 쓰고 있었고, 이는 이윽고 해방되었다.

 

 

"이얏-!" 툼스톤의 예리한 창을 방불케 하는 옆차기가 닌자 슬레이어의 몸통 호구에 부딪혔다. 우드득 거리며 늑골이 삐꺽였다.

"끄악---!" 닌자 슬레이어는 'ㄱ'자로 구부러져 후방으로 날아가, 장지문을 뜷고 쇼야의 자택으로 빨려들어갔다.

"싱겁기 그지없군!" 툼스톤은 조소하면서 수리켄을 네 장 방 안으로 던진 뒤 아시가루 부대에게 시선을 돌렸다.

 

 

"뭘 꾸물거리고 있느냐!" 툼스톤은 얇게 베인 옆구리를 악력으로 지혈한 뒤 아시가루 부대에게 명했다.

"요쓰야노쿠니의 이름 아래 저 낙오무사를 쳐라! 놈은 반병신이다!"

 

 

◆◆◆◆◆◆◆◆

 

 

"나무아미타불, 나무아미타불..." 쇼야의 주택에서 벌어지고 있는 살육엔 전혀 알지 못한 채 유후코는 불단에 기도를 바치고 있었다.

키루지마 타카유키가 무사히 이웃 영토에, 아니면 그보다 더 멀리까지 도망 칠 수 있기를. 그리고 위패를 보았다.

자신의 속내는 과연 어땠던가, 정말로 약사의 긍지 때문에 그 남자를 도왔던 것인가. 그녀는 다시 불단에 스스로의 진심을 고해하였다.

 

 

밖은 묘하게 소란스러웠다, 조닌들이 무언가를 외치며 뛰어다니고 있다.

단어가 띄엄띄엄 들려오고 있다. 쇼아의 자택, 정오, 닌자, 이방인.

 

 

"설마, 그 사람이" 유후코는 불안감에 휩싸여, 장지문을 열고 밖의 상황을 살피려 했다. 거의 동시에, 빗장을 걸어둔 미닫이가 밖으로부터 쪼개졌다.

대로에서 눈부신 햇빛이 스며들어와 불단과 유후코를 비췄다. 거기에 나타난 것은 엄숙한 표정을 한 요쓰야노쿠니의 아시가루 부대였다.

 

 

더불어 음험한 얼굴의 노인이 히죽히죽 웃으며 서 있었다. 오미노로시의 동쪽 입구에 언제나 서 있던 그 노인이였다.

그는 백탁한 눈으로 유후코를 보더니 손가락으로 가리켰다. "이년이지유, 이년, 틀림없구먼유." 노인은 히죽거리며 말했다.

"아무래도 수상한지라 마을 양반들을 통째로 동원해서 망을 보게 한 보람이 있었구먼유. 예전부터 고고한 척 해선 몹쓸 여자였지유. 그래서 반드시 뭔가 일을 저지를 꺼 같으니 옛부터 쭉 감시해 왔구먼유"

 

 

유후코는 심장이 멈추는 듯 했다. 아시가루 부대의 뒤쪽에서 상급 사무라이의 것이라고 생각되는 엄격한 목소리가 울렸다.

"그대가 그 죄인 낙오무사를 보호했다 이거군? 그 자 키루지마 타카유키는, 이웃 영토 미나토노쿠니의 상급 다이묘를 암살하고 이를 발각되어 일가를 멸당한 대악당이다. 사다메 유후코, 그대에게 사형을 언도한다."

 

 

"낙오무사? 모르는 일이옵니다!" 유후코는 무릎이 떨리는 것을 느꼈다. 그것은 공포와 분노로 인한 떨림이였다.

"무언가 착오가 있는 것이 아닐지요" "보세유, 고집 센 여자지유?" 노인이 상급 사무라이에게 비굴한 목소리로 전했다.

 

 

"수년전에 뒈진 저년의 지아비도, 거 어처구니 없이 융통성 없고 의심많은 놈이였지유, 은광과 양귀비에 대해서도 눈치챈 모양인지라 쇼야 님의 지혜와 츠네오=상의 간계도 있어서, 쥐도새도 모르게 해치워 버렸지유. 그치만 이 여자 자는 양귀리를 정제할 줄 아는 귀중한 약사인지라 살려뒀다 이말이지유. 그런데 보십시유. 날이 지나면 지날수록 기어오르고 욕구불만에 빠져선 결국 어리석게도 낙오무사따윌 감싸다니! 어쩔 도리가 없는 년이지유, 분명 그 농익은 몸으로 밤이면 반마다 그 낙오무사를...."

 

 

"닥치고 있거라, 쓰레기가" "예, 예이" 노인은 공포에 떨었다. 목소리의 주인은 누구인가.

모습이 보였다, 상급 사무라이라고 생각했던 그 자는 허무승이였다. 이 말에 탄 허무승이 아시가루 부대를 이끌고 있었던 것이다.

그러나, 요쓰야노쿠니에서 온 자가 아니다.

 

 

녹색의 유도복에 망태를 쓴 그 허무승은 말에서 훌쩍 뛰어내렸다.

그의 가슴엔 이웃영토 미나토노쿠니의 문양이 햐얗게 자수되어 있고, 허리에 둘러진 띠는 칠흑색이였다.

그 띠를 보면 그가 가공할 가라테의 달인이라는 사실은 명료하리라, 허나 그 뿐만 이 아니다. 무언가....아트모스피어가 이상했다.

 

 

"그대가 사다메 유후코인가. 확실히 다부진 얼굴을 하고 있군. 어디 직접 보도록 하지..."

허무승은 아시가루 부대를 좌우로 물리게 한 뒤, 유후코의 자택의 문지방을 흙발로 발고 넘어왔다. 그가 손을 들자 아시가루들이 뒤에서 문을 닫았다.

상인방(※2)에 걸려 있던 순백색의 신토 부적이 독기에 닿은 듯 검게 변색되어 바스락대며 부스러지기 시작했다. 이미 무엇이 일어나고 있는지 그녀의 인지를 넘은지 오래였다.

[※2 상인방 : 창문이나 출입구의 상부에 부착하는 횡기둥으로 상부에서 오는 하중을 지지하는 부재.]

 

 

"과연, 모르핀 차를 마시게 했군." 허무승은 약연과 약 선반에 흘깃 시선을 돌린 뒤, 유후코는 눈에 두지도 않고 벽난로로 향했다. 그리고 잿더미 속에 천천히 손을 들이넣었다.

"앗, 아앗" 유후코는 무언가 말하려고 했지만, 이 남자의 이상할 정도의 존재감과 행동에 위압되어 그대로 굳었다.

한박자 늦게 머리가 움직여, 노인이 한 말이 뇌리에 울렸다.

 

 

(((쇼야 님의 지혜와 츠네오=상의 간계도 있어서, 쥐도새도 모르게 해치워 버렸지유. 그치만 이 여자 자체는 양귀비를 정제할 줄 아는 귀중한 약사인지라 살려뒀다 이말입습지유)))

 

 

나는 애초부터 마을 사람들에게 감시당하고 있었던 걸까. 남편은 모살당했던 걸까. 나는 이 얼마나 어리석은 여자인 걸까.

원통함과 분노가 눈물이 되어 유후코의 뺨을 타고 흘렀다. 그러나, 그녀의 몸은 공포에 얽매인 채였다.

 

 

직후, 이 남자가 입은 유도복의 등에서 하얗게 자수된 불길한 닭 모양의 문양이 그녀의 눈에 들어왔다.

유후코는 전율했다. 이것은 미나모토쿠니의 문장이 아니다. 자신이 아는 한에는 그 어떤 가문의 문장도 아니다. 그럼 이 문장은 대체 무엇인가.

 

 

그 순간, 3인 전의 새벽에 벽난로에서 불타 사라진 그 문장이 유후코의 뇌리에 되살아났다. 그 문장과 똑같다.

그렇다면, 이 허무승이 그 강철의 별을 원래 가지고 있던 자인가. 그렇다면, 모든 것이 키루지마가 말한 그대로였던 건가.

그렇다면, 그건 고열로 몽롱해진 낙오무사의 애처로운 망상이 아니라, 그렇다면, 그렇다면.....

 

 

유후코의 시야가 그녀의 고동에 맞춰 흔들리며 돌아가기 시작했다.

"애먹게 하는군" 허무승은 난로의 잿더미와 그녀의 망각 깊숙히에서 괴사스러운 별모양의 철덩어리를 꺼냈다.

이미 유후코는 그의 안중 밖에 있다는 것처럼, 그는 불길한 쉰 목소리로 중얼거렸다.

 

 

"네 이놈 닌자 슬레이어=상, 이 코카트리스에게서 도망칠 수 있을 줄 알았더냐"

 

 

◆◆◆◆◆◆◆◆

 

 

낙오무사에게의 맹목적인 살의와 투망을 가지고 아시가루 여덟명은 의기양양하며 쇼야의 저택에 돌입했다.

부서진 장롱의 그림자에서 뛰쳐나온 닌자 슬레이어는, 이들을 좌우로 베어넘겨 역으로 살해해 나갔다.

 

 

천장은 높다, 칼을 휘두르는데에 어떤 지장도 없었다. 저택 안은 금방 피투성이가 되었갔다.

고통에 겨워하는 빈사의 아시가루들의 비명으로 저택 안이 가득 채워졌다. 마루에는 팔, 머리, 다리, 창자 등이 뒹굴었고, 칼날엔 피와 지방이 들러붙었다. 지옥이 현세에 강림한듯한 광경이였다.

 

 

"아, 아아...!" "대체 뭐하는 놈이야...!"

투망과 단도를 겨눈 젊은 아시가루 두명이 이 광경을 보고 실금했다. 허나 아시가루에게 퇴각은 용납되지 않는다.

그들은 행랑에서 낙오무사를 협공하려고 했다. 그 자의 좌우에서 동시에 돌격해 온 것이다.

 

 

""이, 이야-앗!"" "이얏-!" 키루지마는 우선 오른편의 아시가루의 철망을 가로찢은 후 그대로 그의 목을 비틀었다.

직후에 뒤에서 단도를 들고 돌격해오는 아시가루를 향해 칼을 뒤로 찔러넣어 가차없이 배를 도려냈다.

아시가루는 울부짖으며 행랑을 뒹굴었다. "날 증오해라. 닌자를 증오해라..." 키루지마는 무자비하게 말했다.

 

 

"기세가 좋구나, 닌자 슬레이어=상!" 뒤쪽에서 툼스톤의 웃음소리가 들렸다. 봉황이 그려진 토벽을 부수면서 자택의 부지에 쳐들어온 것이다.

피와 지방으로 범벅이 된 닌자 슬레이어의 칼을 보고는 툼스톤은 멘포 속에서 잔인한 웃음을 띄웠다.

"아시가루 따위로 날 죽일수 있다고 여긴거냐?" 닌자 슬레이어는 숨을 가빠하며 어긋 안개자세를 취했다.

 

 

"카카카카카캇!" 툼스톤은 다시 칼을 높이 치켜들며 조소했다.

"아시가루로 닌자를 죽일수 있다는 허황된 생각은 하지 않는다, 놈들은 단지 피와 지방으로 가득 찬 포대기에 불과해. 보거라, 닌자 슬레이어=상, 네놈의 그 칼을. 그 아무리 강하게 단련된 빼어난 명도라도 수십명을 베면 무딘 칼과 다름없지."

 

 

두 닌자는 다다미 두첩의 거리에서 서로 마주봤다. 발밑에는 희미하게 피가 고여있었다.

"네놈들 닌자를, 몰살해 보이겠다" "지껄여대거라!" "이얏-!"

 

 

닌자 슬레이어는 살의를 응축시키면서, 벽을 차올라 삼각뛰기를 행하며 베어들었다. 허나, 툼스톤은 이를 역시 튕겨냈다.

카타나로 맞부딪쳤음에도 불과하고 키루지마의 몸은 튀어올라 자세가 무너졌다.

 

 

"이얏-!" "끄악-!" 툼스톤의 앞차기를 받고 닌자 슬레이어는 뒤쪽으로 날려보내졌다. 그러나 이번엔 가라테 방어가 들어갔다.

키루지마는 공중에서 제동을 행했다. 그대로 연이어 한손으로 측회전하면서 오이란이 그려진 금자수를 뜷고 들어가 안쪽의 다다미방에 착지했다.

발뒷꿈치가 다다미를 파내어 부지직대는 탄자국을 만들었다. 그 곳은 쇼야의 방이였다.

 

 

"아이에에에에!" 쇼야는 대부 장부와 코베인 더미를 껴안으면서 기겁하며 비명을 질렸다.

키루지마는 쇼야에게 눈길 한번 주지않고 전신의 격통을 이를 악물어 버티면서 툼스톤을 향해 어긋 안개자세를 취하였다.

 

 

"아이에에에에! 나, 낙오무사!? 아니, 낙오무사의 닌자!? 그, 그, 걸레같은 약사년이...이 무슨 재앙을 불러들었단 말이냐..! 츠네오=센세이, 아니, 툼스톤=상! 지금 당장 해치워 주십시오! 당장 저놈을 쳐죽여 주십시오오!" 당황한 쇼야는 뒷구석에서 떨리는 목소리를 내며 실금했다.

키루지마는 미세하게 미간을 찌푸렸다. 약사, 유후코, 감싸준 일이 들통났나. 이마에 매인 붕대에 피가 배어 키루지마의 발밑에 떨어졌다.

 

 

"죽거라, 닌자 슬레이어=상. 네놈의 가라테따위 소꿉장난에 불과하다. 이곳이 네놈의 불단이 될 거다."

 

 

호구에서 툼스톤이 나타났다. 여전히 행량에서 고통에 겨워 뒹굴고 있는 아시가루의 머리를 벌레를 대하듯 짓밟아 으깨면서.

키루지마의 기억이 혼탁해지며 불타 부스러지는 자신의 집이 겹쳐졌다. 흩어져 있던 증오가 묶여서 중첩되어갔다.

가증스러운 닌자. 닌자에게 죽음을. 닌자에게...죽음을...!

 

 

"이얏-!" 닌자 슬레이어가 베어 들어왔다. "이얏-!" 툼스톤이 이를 요격했다.

두 닌자는 몇번이고 서로 칼을 맞부딫쳤다. 그러나 가라테의 와자마에는 여전히 툼스톤 쪽이 현저히 우위에 있었다.

"무의미한 발버둥이다!" 툼스톤은 이를 닌자 슬레이어의 자포자기의 돌격이라고 판단했다. 허나 그 순간.

 

 

"나라쿠!" 키루지마가 외쳤다.

 

 

찰나, 그의 양 눈동자가 선향처럼 작게 수축하여, 머리칼이 모근에서 끝까지 희게 변하였다.

닌자 슬레이어의 움직임은 마치 색깔이 붙은 바람과도 같이 변해 툼스톤조차 막아내는 것이 겨우일 정도의 속도로 연이어 참격을 발하고 있엇다.

 

 

"이이야아아아아아앗!" "이, 이건 대체!?"

발광하는 붉은 눈동자가 지옥의 반딧불이처럼 궤적을 그렸다.

마치 방 안에 칼바람이 불고 있는 것처럼, 문잡이, 장롱, 불단, 병풍, 족자, 기둥, 그 모든 것을 휩쓸며 서로의 참격이 맞부딫쳤다.

 

 

"무슨 힘이...!?" 툼스톤은 질겁했다. 그리고 닌자 육감을 통해 무시무시한 사실을 꺠달았다. 이 주택 안에서 괴로움어 떠는 아시가루들의 비명.

그중 몇몇개는 자신의 불운을 비관하고, 부글부글거리는 피거품을 내뿜으며, 감히 말로 표현할 수 없는 닌자에게의 저주를 토해내고 있었다.

그 저주가, 그 모든 저주가 힘이 되어서 닌자 슬레이어의 가슴에 빨려들어가고 있었다.

 

 

"네, 네놈 설마, 닌자에게의 증오를 먹어치우고 있다는 게냐?!"

"끄끄하하하하하...아시가루따위 피와 지방으로 찬 포대기에 불과하다 하였느냐? 애송이 놈."

사신의 멘포가 일그러져, 잔혹한 웃음의 표정을 띄웠다. 키루지마에게 빙의한 사악한 닌자 소울이 복수의 기쁨에 겨워 표출된 것이다.

 

 

 

"공교롭게도, 요는 내게 있어선 증오를 거세게 하는 장작이다!"

그 순간에도 멈추지 않는 맹공! 둠스톤은 간발의 차로 마구 찔러들어오는 적의 칼끝을 피하고 있었다.

"이, 이 무슨 불길한 닌자 소울! 두령님께 보, 보고해야만" "이얏-!"

 

 

"핫!?" 둠스톤은 한 손으로 목을 눌렀다. "카카카칵...!?" 목젖이 위치한 곳이 쩍 벌어져, 토마토 즙처럼 붉은 선혈이 뿜어져 나왔다.

이내 견디지 못하고 리얼 닌자는 비틀거리며 두 보 뒷걸음쳐, 주축 기둥에 몸을 부딪쳤다.

견고하던 묘석의 자세가, 드디어 무너졌다.

 

 

 

"닌자에게...죽음을!" 흑발로 돌아온 닌자 슬레이어는, 양 눈에서 피눈물을 흘리며 떨어진 반신을 노려봤다.

증오의 분류가 키루지마의 심장의 화로에서 불타올라, '닌'자를 '살'해하겠다고 표하는 강철의 멘포를 통해 지옥의 증기가 되어 밖으로 뿜어져 나왔다.

 

 

"기, 기다려라, 닌자 슬레이어=상, 네놈의, 그 힘은..!"

"키리스테!" 키루지마의 칼을 덮은 피와 지방이 검은 불꽃이 되어 타올라, 도신이 붉게 달구어져, 순간 번쩍였다.

 

 

발돋움 후, 우측 상단을 향한 바깥 엇베기.

'슈욱' 하는 소리와 함께, 칼날은 닌자의 왼쪽 허리에서 근육과 내장을 차례차례 절단해, 등 뒤의 기둥 째로, 배골과 늑골을 절단하면서, 오른쪽 겨드랑이 밑으로 빠져나왔다. 이 참격의 궤적은 그 후에도 곧게 뻗어나가, 적의 오른팔을 팔꿈치 세 치 위의 곳까지 잘라냈다.

 

 

"끄아-아-악!?" 툼스톤은 절규했다. 직후, 다시 참격이 돌아왔다.

"고멘!" 키루지마는 적의 목을 왼쪽에서 오른쪽으로 수평으로 베어갈랐다.

 

 

두근! 툼스톤의 뇌내 아드레날린이 분출되어, 그의 체감시간은 진흙처럼 느리게 지나갔다.

치켜들려고 한 자신의 검은 칼은 절단된 오른팔과 함께 허공을 돌고 있었다. 이래선 때에 맞지 않는다.

닌자 슬레이어의 칼에 시선을 돌린다. 그의 오른쪽 목덜미에 붉게 달구어진 칼날이 닿고 있었다. 떠오른 혈관이 찢어져. 핏방울이 튀고 곧바로 증발했다.

 

 

툼스톤의 시선은 완만한 시계추처럼 닌자 슬레이어의 칼의 궤적에 맞추어 오른쪽에서 왼쪽으로 움직였다.

그의 피부와 목뼈가 두동강이 나는 광경을 그저 보고 있을 수 밖에 없었다. 어찌 할 바 없도다. 얄궂게도 이 내뇌가속은 그에게 있어 연장된 고문일 뿐이였다.

 

 

툼스톤의 시야가 회전했다. 마을을 굴러다니는 양귀비처럼, 효수가 되어 허공을 돌았다. 

절단당한 닌자 육체는 실이 끊어진 죠루리 인형처럼 무너져 내려, 잿더미로 변하였다. 

 

 

"사요나라!" 툼스톤은 폭발사산!

 

 

거의 동시에, 키루지마가 쥐고 있던 칼도 암흑 가라테의 과부하를 이기지 못하고 산산히 부숴졌다. 키루지마는 칼자루만을 쥐고 잔심을 마친 뒤,

허공에 뜬 적의 목을 붙잡고 자신의 피로 엮은 검붉은 보자기에 넣어 허리에 달았다. 고우랑가! 모든 것이 한순간의 신기(神業)였다.

 

 

"아이에에에에에! 아이에-에에에에에에! 닌자! 아이에에에에에에에에에에" 뒷쪽에서는 발광하고 만 쇼야의 괴성이 허무하게 울리고 있었다.

키루지마는 아시가루의 칼을 주운 뒤, 시체 투성이의 저택을 빠져나와 격자문을 부수고 대로에 나왔다. 설마 낙오무사가 살아있을 거라곤 꿈에도 모르고, 모여있던 조닌들은 거미 새끼가 흩어지듯 도망쳤다.

 

 

"네, 네놈! 츠네오=상에게 무슨 짓을!?" "요쓰야노쿠니의 문양이 보이지 않느냐!? 당장 도게자하라!"

대기하고있던 아시가루 부대는 공황에 빠지기 일보 직전의 상태에서 창을 겨누어 부상당한 낙오무사를 포위했다.

톡, 톡, 하고 이마에 맨 붕대에서 피가 스며나와 키루지마의 턱을 타고 발등에 떨어졌다. 키루지마는 유후코의 자택을 향해 눈을 돌렸다.

 

 

그 뒤에서는, 주축 기둥이 부셔진 쇼야의 자택이 기울면서 안쪽으로 무너져 내리는 중이였다.

방 안에 남겨진 쇼야며 하인들이며 아시가루들의 비명이 들끓다 이내 짓눌린 듯 조용해졌다. 키루지마는 다시 칼을 바로잡았다.

 

 

[후편(終)에 이어짐]

 

◆◆◆◆◆◆◆◆◆◆

 

SAMURAI NINJA SLAYER

【하이눈, 닌자, 노마드】(후편)

 

 

'앗'하는 외침과 함께, 사무라이에게 베어들었을 터였던 아시가루의 목이 높이 날아갔다.

절단면에서 피가 치솟고, 남은 몸똥이는 기모노의 허리끈을 잡아당겨진 게이샤마냥 회전하여 칼을 겨눈 채 그대로 뒤에 있는 짐수레에 쓰러졌다. 목의 절단면은 추하고 거칠었다.

 

 

직후, 수십명의 외침과 노호가 대로를 가득 채웠다. 키루지마의 닌자 청력은, 그 소리들에 짓눌려가는 유후코의 비명을 확실히 붙잡았다.

키루지마는 이를 갈았다, 이마와 정강이에서 피가 고여 떨어졌다.

 

 

"놈은 부상을 입었다!" "요쓰야니쿠니의 문장에 걸고!" "저 낙오무사를 죽여라!" 주군에게의 열렬한 충성심으로 눈을 빛내며 가로막는 아시가루 부대.

"듣거라! 놈을 친 자에게는 다이칸 님꼐서 쌀 스무 가마니를 하사하실 것이다!"

 

 

"이봐, 방금 들었냐!" "해치우겠어!" "죽여라! 죽여라! 죽여라앗!" 얼굴빛을 바꾸는 젊은이들, 야쿠자, 전투 오이란, 전직 스모토리들.

하늘에 치솟는 창, 칼, 가래, 낫, 부채 암기, 금방망이. 집집마다 위에서 겨눠지는 퇴역 로닌들의 화살, 또는 투망, 돌맹이!

"이얏-!" 키루지마는 몰려오는 적을 좌우로 베어넘기면서, 무자비하게 직진했다. ""끄악-!"" 절규와 피가 흩날린다!

 

 

"이얏-!" 키루지마는 숙소의 이층에서 날아온 화살을 칼로 베어내며 그대로 회전참격을 발했다.

눈 앞의 아시가루는 밑에서부터 어스름히 베여넘겨졌다. "끄악-!" 피보라, 핏방울.

 

 

눈 앞의 시체를 차 날리고 키루지마는 짐수레에 올라 양 발에 힘을 모았다. 강철 멘포에서 검은 증기가 뿜어졌다.

높게 회전도약. "이얏-!" 지붕 기와에 착지. 뼈가 삐걱이며, 다리가 비명을 질렀다. 얼굴을 일그러뜨리며 다시 달렸다. 유후코의 자택이 있는 직인 거리를 향해.

그리고 또 한명의 닌자의 기척을 향해.

 

 

키루지마는 우둔한 자는 아니다. 분명히 느끼고 있었다.

지금 오미노로시의 대기는 조정을 향한 충성심, 포상으로 내려질 쌀가마니에의 야심, 그리고 리얼 닌자의 사악한 기운이 섞여서 이상한 아트모스피어를 자아냈다.

그 아트모스피어에 삼켜진 아시가루와 조닌들이 매도하는 소리를 높이며 증오에 차서 키루지마를 쫒아오고 있었다. 굶주린 상어무리처럼.

 

 

정오, 닌자, 이방인.

하늘에는 밝은 햇빛과, 구름 한 점 없는 창공. 그러나 은광에서 불어오는 메마른 바람을 타고 흐르는건, 죽은 사령들의 원통한 목소리였다.

 

 

지금 그 소리없는 목소리들은 '닌자를 죽여라', '닌자를 죽여다오'라며 키루지마에게 속삭여왔다. 머릿 속에서 노이즈가 섞여서 마구 울려온다.

그 중. 한층 예리하게, 송곳처럼 찔러오는 목소리....유후코를, 그 여인숙 마을에 남겨두고 말았소. 소인의 처를 악의로부터. 닌자의 폭정으로부터. 구해 주시오, 라고.

...그 목소리는 나라쿠의 홍소에 섞여서 키루지마에게 힘을 전했다.

 

 

자신의 목소리는 아니다. 결코 이것은 자기 스스로의 바램도 아니다. 이건 자신의 복수다. 그 누구에게도 넘기지 않는다. 나 자신의 가문을 위한 복수이다.

단지 지옥으로만 이어질 복수다. 그 누구에게도 등지게 할 생각은 없다. 그 누구도 말려들게 할 생각은 없다.

 

 

...그러나 지금은, 흘러들어오는 닌자에게의 증오가 스스로의 힘이 된다.

심장이 증오를 동력으로 고동치며, 시야는 붉게 물들어 간다.전신에 힘이 퍼지고 있다. 닌자를 죽이기 위한 힘이.

이미 되돌릴 방도도 없다. 설령 영원히 저주받게 되더라도 나는 그 날의 닌자를 죽여 보이겠다. 처자식을 벌레처럼 살해한 그 가증스러운 닌자를...!

 

 

「Wasshoi!」 닌자 슬레이어는 회전도약하여, 장옥의 지붕에서 뛰어내려 우물 옆에 착지했다. 그리고 직인 거리의 입구를 주시했다.

이미 그곳엔 아시가루들이 수비를 굳히며 창끝을 그에게 향하고 있었다. 오늘 오미노로시에 쳐들어온 아시가루 부대는 처음부터 두쪽으로 나뉘어

한쪽은 쇼야 자택에, 다른 한쪽은 직인 거리에 향했었던 것이다.

 

 

◆◆◆◆◆◆◆◆

 

 

"책형에 처해라." 허무승 망태를 쓴 남자가 문을 열고, 집 안에서 유후코를 거리를 향해 내던졌다. 허리끈을 쭉 당기면서.

"아윽-!"유후코는 팽이처럼 회전하여, 아시가루와 조닌들이 몰려있는 대로에 반라 상태로 뒹굴었다.

 

 

한낮의 태양 아래, 새하얀 가슴폭과 넓적다리가 드러났다. 치욕의 나머지 유후코는 머리에서 더욱이 핏기가 가셨다.

무의식적으로 손으로 세푸쿠를 하기 위한 날붙이를 찾고, 그럴만한 것이 없음을 깨닫자 혀를 물어 세푸쿠하려 했다.

"아직 죽게 두지 마라"라고 남자 지시하자 곧바로 아시가루들이 수건으로 재갈을 물려 그녀의 세푸쿠를 막았다.

 

 

"아깝구먼..." "나무삼보(南無三寶)..." 아시가루들은 군침을 삼키면서 유후코의 몸을 책형대에 메달았다.

"이히히히! 죄목은 뭐라 하는것이 좋을지유" 서예붓과 나무판을 들고 온 노인이 허무승 닌자의 옆에 달려와 천박한 웃음을 띄우며 고개를 꾸벅 숙여 물었다.

 

 

"죄목따위 정해져 있다. '이 여자, 조정에 대하여 반역을 기도한 혐의로, 욕보인 뒤 처형하노라'..."

허무승 망태를 쓴 남자가 말하던 도중.대로 쪽에서 한쪽 팔을 잘린 아시가루가 실금하며 달려왔다.

"크, 크크크크, 큰일입니다! 츠네오=상이! 츠네오=상이 그 낙오무사의 손에...! 쇼야의 자택도 무너져서...!"

 

 

"야, 저건...!" 다른 아시가루가 떨리는 목소리로 그 뒤쪽을 가리켰다.

짜그락, 짜그락하며 자갈을 으깨면서 직인 거리로 걸어오는 사악한 그림자가 보였다.

 

 

그 자는 오른손에 칼을 쥐고 전신을 튄 피로 새빨갛게 물들인 괴물같은 모습의 낙오무사였다. 강철 멘포에서는 검은 증기가 뿜어져 나왔다.

그 낙오무사의 한보 한보에 무시무시한 집념과 분노가 어려있어, 지나간 땅에 짚신의 형상이 그대로 패여질 정도였다.

 

 

"호오" 망태를 쓴 남자는, 망태의 틈새 속에서 눈을 가늘게 떴다. 낙오무사는 상처입은 한족 발을 끌고 다녀, 제대로 걷지도 못 할 만큼 초췌해 보였다.

"아으으으-윽!" 자택 앞에서 책형대에 매달린 유후코는, 재갈이 물려진 채 발버둥 치며 외치려고 했다. 이 수를 상대로는 당해낼 수 없사옵니다, 도망치십시오, 라고.

허나 그 말은 키루지마에겐 들리지 않았다. 아니, 들렸다고 한 들 그는 멈추지 않았으리라.

 

 

낙오무사는 유후코를 향해 천천히 걸었다. 이를 그대로 지나가게 나둬선 조정의 명예를 욕보이는 일이다.

아시가루가 몇명 달려들어, 그대로 베어져 나갔다. 조닌과 아시가루들은 그대로 좌우로 갈려 양쪽 길가로 그를 물러나 막는 자들은 없어졌다.

낙오무사와 유후코가 매달린 책형대의 거리는 앞으로 다다미 스무 장 정도였다.

 

 

"화승총을 써라!" 아시가루 대장이 명령했다. "예!" 이미 장통을 든 총수 아시가루 한명이 사격 준비를 마치고 한쪽 무릎을 끓고 조준하고 있었다.

화승총. 그것은 온전한 호구조차 가볍게 꿰뜷는 그 위력으로 인하여 '사무라이즈 베인'이라는 이명으로 경외시된 전장식의 머스킷 총이였다.

매우 고가의 물건이였으나. 다이칸의 권력을 과시하기 위해 이 아시가루 부대에게도 딱 한정이 배치되어 있었던 것이다.

 

 

옻으로 흑칠한 장통. 그 위광에 조닌들은 무심코 고개를 숙였다. 그러나 키루지마는 위축되지 않았다.

"쏴라-앗!" 아시가루 대장이 군바이(軍配)를 들었다. BLAMN! 굉음이 울리고, 조닌들은 전율했다. 사십사구경의 총구에서 치명적인 납탄이 뿜어져 나갔다.

"이얏-!" 검붉은 낙오무사는 한 보도 전진을 멈추지 않고 양팔을 방패처럼 앞으로 내밀어, 그대로 후려친뒤 계속 전진했다.

 

 

"아이엣!?" 아시가루 대장은 질겁했다. 무엇이 일어난 것인지 곧장 이해가 되진 않았다. 한박자 늦어서야 그는 깨달았다.

낙오무사의 갑옷 토시가 검은 불꽃이 휘감겨, 요사하고 불길한 쇠붙이로 변해있는 것을. 낙오무사는 탄환은 가라테로 튕겨낸 것이다.

허나, 호구조차 꿰뜷는 이문통의 화승총의 탄을 토시로 튕기는 건 인간이 할 수 있는 짓이 아니다. 아시가루 대장의 어금니가 덜덜 떨렸다.

 

 

"히익, 저 놈, 그냥 낙오무사가 아니다..." 대장의 얼굴에 무언가 철벅철벅 튀어 묻었다.

그가 돌아보자 사격을 마친 아시가루가 죽어 있었다. 튕겨나간 납탄에 머리가 꿰뜷린 것이다.

그의 머리는 갉아먹힌 사과처럼 파여서 피가 뿜어져나오고 이었다. 아시가루 대장의 의혹은 지금 확신으로 바뀌었다. "저것은, 닌자....닌자다...!"

 

 

"겁먹지 마라! 조정의 위광에 먹칠을 할 셈이냐!" 우렁찬 목소리가 주위를 압도했다.

큰 징이라도 울린 것 마냥 그 자리의 아시가루와 조닌들이 쥐죽은 듯 조용해졌다. 허무승 차림의 남자가 앞으로 나서 낙오무사의 앞을 가로막았다.

이 허무승 차림의 남자의 정체는, 리얼닌자이다. 경솔히 거리를 좁히려 들면 죽는다. 낙오무사도 그것을 깨닫고 걸음을 멈춰 어긋 안개자세를 취하며 다다미 아홉 장의 거리에서 노려봤다.

 

 

망태를 쓴 남자는, 양 손을 가슴 앞에서 합장한 뒤, 아이사츠했다.

"도-모, 코카트리스입니다 ...찾고 있었다, 닌자 슬레이어=상. 나의 독이 아직 잔재한 상태에서 요쓰야노쿠니까지 도망쳐, 더욱이 툼스톤=상을 폭발사산시키기까지 하다니, 실로 예상 밖이었다."

 

 

"도-모, 코카트리스=상, 닌자슬레이어이외다." 낙오무사는 아이사츠에 회답했다. 그 목소리는 억눌려 있었지만, 차마 숨기지 못할 분노로 떨리고 있었다.

"요쓰야노쿠니까지 그대들 영업조합의 손이 뻗쳐있었을 줄이야. 허나 이걸로 수고가 줄었다. 전부 엮여있었다는 소리군"

 

 

"그렇다면 어쩔 테냐" 코카트리스는 품에서 여덟 장의 수리켄을 꺼내, 그것을 네 장씩 양 손에 흘려 쥐었다. 예리한 날이 자기 자신의 손바닥을 찢어

타르처럼 검은 피에 적셔졌다. 이건 의도적인 행동이다. 코카트리스의 피 자체가 맹독이며 그의 무기였다.

".......그렇다면 그 목,함께 받아갈 뿐이니" "헛소리!" 코카트리스는 웃었다, 그에게는 승산이 있었다.

 

 

수일 전, 코카트리스는 황야에서의 이쿠사 도중 맹독 수리켄을 몇 장 명중시켜 닌자 슬레이어를 폭발사산 직전까지 몰아넣었다.

지금 보아하니 닌자 슬레이어는 그 때보다도 더 심한 부상을 입은 상태다. 툼스톤에게 당한 발의 상처는 특히 심각하여 걷는 것이 고작이겠지.

이 독 수리검으로 찰과상 하나라도 입힌다면 놈은 맥없이 죽으리라. 허나 쇠약해져 있어도 닌자는 닌자. 그 한 장을 어떤 수로 명중시킬 것인가.

 

 

코카스는 머릿 속으로 무자비한 이쿠사 전개도를 세웠다. 놈을 도발하여 시야를 좁혀, 이쪽의 사정거리로 유도한 뒤 거기서 수리켄을 던진다.

놈은 무슨 수를 써서라도 수리켄을 전탄회피하려 할 것이다. 허나 이쪽은 수리켄이 여덣 장. 이윽고 전부 피하지 못하고 여섯 장, 혹은 일곱 장 째에서 놈은

브릿지 회피를 취할 수 밖에 없을 것이다. 그때를 노린다.

 

 

"닌자 슬레이어=상, 네놈의 발버둥은 무의미하다. 이몸이 네놈을 친 뒤, 툼스톤의 대행자가 이 지방에 파견될 것이다. 조닌들의 평화는 지켜지고, 오미노로시는 그 어떤 변화도 없이 이어지겠지..." "그 어떤 변화도 없이, 싸구려 양귀비를 재배하는 삶이 말이냐" 

 

 

키루지마는 어긋 안개자세를 취하며 노려봤다. "그리고 네놈들이 그걸 착취할 터." 

"이 전란의 시대에 모탈들은 개미처럼 짓밟힐 운명이다. 그렇다면 살아서 일자리를 얻는 것 만으로도 층분한 행운이 아닌가?" 코카트리스는 어깨를 으쓱였다.

"그대를 죽인다." 닌자 슬레이어는 눈에서 살의의 불꽃을 이글대며, 곧바로 뛰어들어 왔다.

 

 

"이얏-!" 코카트리스가 선수를 잡아 오른손의 수리켄 네장을 투척했다. 그는 승리를 확신하고 있었다.

허나 바로 다음 순간, 붉은 잔광을 공중에 그리며 닌자 슬레이어가 코 앞에 당도했다. 이아이도 발디딤에서 이어진 가공할만한 가속이였다.

 

 

모든 것이 코카트리스의 오산이였다. 키루지마가 직인 거리를 걷지 않고 일부러 화승총의 총구에 그 몸을 내민 연유는 초조함이나 부상에 있지 않았다.

단지, 미칠 듯 강렬한 나라쿠의 힘을 한계까지 모아서 지옥의 용수철 처럼 발디딤의 보폭을 일순간에 폭발시시키 위해서였다.

 

 

"이얏-!" "끄악-!?" 코카트리스는 어께에서 흉판까지 얇게 베여나가면서 쓰고 있던 망태가 산산조각 났다.

독을 머금은 핏방울이 튀며, 상처투성이의 얼굴과 놋쇠 멘포, 붉은 닭볏형 머리칼, 그리고 파충류처럼 얇은 눈동자가 드러났다.

 

 

지근거리에서의 가라테 응수 뒤, 코카트리스는 피를 흩뿌리며 사연속 뒷돌기를 행하며 일단 후방으로 멀리 물러났다.

"이 무슨 무모함...!" 분출되는 닌자 아드레날린 속에서 그는 검붉은 낙오무사를 노려봤다. 수리켄 네 장은 확실히 명중했다.

그러니 독 짓수가 퍼질 것이라 코카트리스는 생각했다.

 

 

허나 그것도 오산이였다. "살벌!" 닌자 슬레이어는 독 수리켄을 아랑곳하지 않고 어긋 안개자세를 취하며 돌진해 왔다. 그 눈은 복수의 광기로 강렬히 빛나고 있었다.

 

 

이는 어찌하여인가. 검은 불꽃이 그 답이였다. 같은 짓수에 두 번 당할 나라쿠 닌자가 아니였다.

수리켄에 칠해진 체액을 나라쿠의 힘으로 연소시켜 초자연적 독이 키루지마의 채네에 침입하는 것을 막은 것이다.

 

 

"노, 놈을 죽여라! 계집도 죽여라!" 코카트리스는 그렇게 외치며 연속 옆돌기를 행한 뒤 벽을 박차며 아시가루 부대 속으로 꼴사납게 도망쳤다.

""아이에에에에에!"" 그의 독기를 머금은 피를 뒤집어 쓴 아시가루들이 비명을 질렀다. 유후코는 자신의 명운을 깨닫고 눈을 감고 나무아미타불을 외웠다.

 

 

키루지마는 피에 굶주린 사냥개처럼 코카트리스를 쫒던 도중 이내 멈추었다. 그리고 옆으로 돌아 유후코가 매달린 책형대를 향했다.

아시가루의 창끝이 유후코의 배를 장지문처럼 찢기 직전, 키루지마는 그녀를 구속하고 있던 밧줄과 재갈을 동시에 잘라냈다. 유후코는 책형대 아래에 굴렀다.

공포 때문인가 짓수 때문인가, 유후코는 발허리가 떨려 제대로 일어나지도 못하는 것 같았다. 허나 아직 기운이 있었다.

 

 

"사무라이님, 도망치십시오! 저 따윈 놔두고! 발목을 잡을 것이옵니다!" 유후코는 비명 대신 그렇게 외쳤다.

그러나 키루지마는 그걸 다 듣기도 전에 유후코의 팔을 당겨서 다짜고짜 그녀를 등에 짊어졌다. "소인 역시, 닌자이외다..!"

 

 

수초 늦게 아시가루들의 창이 책형대 아래의 땅에 파고들었다. "이얏-!" 키루지마는 왼손으로 등에 진 유후코를 지탱하며 칼과 발을 휘두르며 아시가루들을 쳐 넘겼다.

간판과 우물을 박차며 높이 뛰어올라 장옥의 지붕에 착지했다, 그리고 유후코를 짊어진 채, 부상을 입은 코카트리스를 추격했다.

 

 

(((바카!))) 나라쿠가 그를 우둔한 자라 매도했다.

(((아무리 이 내가 독을 불태워 준다고 한들, 그렇게 가볍게 피를 소모시켜선 그대의 육신이 더 일찍 피폐할 뿐이다! 키루지마여! 놈을 다시 놓쳐버릴 셈이더냐!)))

 

 

"놈은 마을 밖으로 도망쳤소...!" 키루지마는 귀신과도 같은 형상으로 달려나가며, 억눌린 목소리로 유후코에게 전했다.

"그대를 송림에 내린 뒤, 놈의 숨통을 끊으리라!" "사무라이님, 당신이 닌자라면, 차라리..." 유후코가 결심하여 속삭였다. "모든게 끝난 뒤, 절 데려가 주시겠습니까"

 

 

뒤에서 날아오는 화살 중 한 발이 유후코의 오른쪽 종아리에 꽂혀 크게 흔들렸다.

그러나 유후코는 비명 한번 지르지 않고, 마치 고통조차 느껴지지 않는 것처럼 보였다.

그녀는 키루지마에게 이어서 말했다. "......저는 약사입니다. 적어도 무언가 도움이"

 

 

(((안 된다))) 나라쿠가 이상을 감지했다. (((곧바로 이 계집을 버려라, 키루지마...!)))

"닥쳐라, 나라쿠!" (((걸리적 거린다는 소리가 아니다...! 이 계집의 몸속에 독기가...!)))

나라쿠의 경고가 옳았다. 거의 동시에 키루지마는 직인 거리의 길가에서 뒤돌아보는 코카트리스의 눈에서 잔혹한 웃음기를 읽었다.

 

 

"걸렸도다! 이얏-!" 코카트리스가 인을 맺으며 가라테 샤우트를 외쳤다,

바로 다음 순간, 유후코의 등에 닭의 문자와 한자가 문신처럼 떠올라 불길하게 빛나는가 싶더니, 그녀의 복부가 안쪽에서부터 터졌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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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걸렸도다! 이얏-!" 코카트리스가 인을 맺으며 가라테 샤우트를 외쳤다,

바로 다음 순간, 유후코의 등에 닭의 문자와 한자가 문신처럼 떠올라 불길하게 빛나는가 싶더니, 그녀의 복부가 안쪽에서부터 터졌다.

그것은 이전 유후코의 자택에서 코카트리스가 걸어 두었던 사악한 독 밤 짓수의 힘이였다.

 

 

SPLAAASH! 풍선이 터지는 듯한 굉음과 함께 녹빛으로 변색된 독혈이 키루지마의 등에 쏟아졌다.

키루지마는 그녀를 짊어진 채, 간판을 차마 박차내지 못하고 아시가루와 조닌의 무리들이 모인 대로의 한복판에 추락했다.

그는 곧장 일어섰으나 그의 전신은 납처럼 무거워저, 관절이 비틀거리기 시작했다.

 

 

키루지마의 몸을 타고 뚝 뚝 피가 떨어졌다. 그것은 독 짓수로 오염된 유후코의 피였다.

살아있는 독주머니로써 이용된 그녀의 신체는 내부에서 터져 산산히 찢어져 누더기처럼 무참한 모습이였다.

 

 

"아앗......." 그럼에도 유후코에겐 아직 의식이 있었다. 통각은 모르핀이 도는 것 처럼 마비되어 있었으나 그녀는 겨우 숨을 내쉬었다.

그리고 무엇이 일어난 지도 이해하지 못한 채, 피투성이의 자신의 몸과 키루지마를 막연히 쳐다봤다. 그 시야도 점점 희미해져 가고 있엇다.

 

 

(((독 짓수의 힘으로 연장된 잠시간의 생명이다. 이 계집은 이미 죽은거나 다름없어. 그렇기에 고통을 못 느끼는 게다...!)))

그러나 키루지마는 그녀를 버리지 않았다. 그 대신 짐승과도 같이 울부짖으며 코카트리스를 향해 돌진했다.

"죽인다!" 한쪽 팔로 검을 휘두르고, 아시가루들을 가로찢고, 화살을 쪼개면서. "죽인다!" 전신의 관절이 어긋나 있었다. "죽인다!"

 

 

유후코는 독혈을 토하면서 웅얼거리며 키루지마에게 사죄했다. "송구하옵니다, 사무라이님......저는......" 그리고 분한 듯 입술을 깨물었다.

키루지마는 다가오는 아시가루며 전직 스모토리들을 차례차례 베이넘기면서, 이를 악물고 말했다.

 

 

"그대의 잘못은 없소...!" 그의 단발은 점차 희게 변색되고 있었다.

"저는 처음부터 감시당하고 있었어요....남편도....쇼야와 츠네오=상에게 모살당하여....그런 줄도......깨닫지 못하고......"

"그놈들은 모조리 죽였다" "내버려...주세요" "버리지 않겠다" "어째서죠......"

 

 

"나(儂;와시)는 복수에 미친 악귀다" 닌자 슬레이어는 포위를 뜷고 나가 피눈물을 흘리며 지고쿠 헬에서 나온 듯한 목소리로 전했다.

유후코의 원통함과 증오는 그에게 힘을 가져다주고 있었다. "닌자를 증오하고, 나를 증오하고, 나를 원망해 다오"

"당신을.......원망할 도리따윈 없습니다" "그렇다면......."

 

 

키루지마는 주위를 포위한 아시가루 네 명의 배를 가차없이 베어가르면서, 이를 악물고, 손으로 가리키며, 칼날처럼 예리한 눈길로 코카트리스를 노려봤다.

검은 불꽃이 유후코를 감싸기 시작했다. 닌자 슬레이어와 유후코의 시야가 겹쳤다.

 

 

"" 저 놈을. ""

 

 

"아직도 싸울 기운이 남아 있는가, 닌자 슬레이어=상! 그 끈질김에 찬사를 보내마! 이얏-!"

코카트리스는 교활한 전법을 보였다. 거리 밖으로 도망치나 싶더니 장옥의 지붕을 타고 쇼야의 자택 앞까지 돌아와선 아시가루와 조닌들을 내보냈다.

 

 

그리고 닌자 슬레이어와는 너무 가깝지도 멀지도 않은 거리를 유지하며, 주변의 수하가 줄면 다시 마을을 종횡무진으로 뛰어다니며 적을 유도해 독 수리켄으로 체력을 소모시켰다. 그러나, 그럼에도 불구하고 닌자 슬레이어는 그를 계속 추격해왔다.

 

 

"아직이냐, 아직도 쓰러지지 않는단 말이냐, 닌자 슬레이어=상!" 코카트리스도 이제는 필사적으로 몸부림치고 있었다.

처음에 입은 창상이 닫히지 않고 피가 계속 흘러넘치고 있다. 이대로 같은 전법을 고수하면 언젠가 자신의 장기말들은 몰살당하고 만다.

그렇게 되기 전에, 이 미친 검붉은 낙오무사의 닌자를 해치우지 않으면 안 된다.

 

 

그 순간, 숙소에서 비처럼 내려오던 화살 중 한 발이 기어코 피해내지 못한 닌자 슬레이어의 어깨와, 매달려 있던 유후코에게 꽂혔다.

이어서 두발, 또 이어서 다른 화살들이 차례차례 꽂히기 시작했다. "으윽-!" 키루지마는 비틀대며 고통에 신음했다. 유후코는 이미 아픔은 느끼지 않았지만

그녀도 역시 신음했다. 단지 분할 뿐이였다. 적어도 저 닌자에게 한번이라도 반격하고 싶었다.

 

 

화살들을 뒤집어 쓴 닌자 슬레이어. 코카트리스는 이를 기회라 보고 결착을 짓기 위해 거리에 내려와 가라테를 취하였다.

허나 그건 닌자 슬레이어에게 있어서도 천기일우의 기회였다. 거의 동시에, 키루지마와 유후코는 깨달았다. 화살이 그들의 육체를 꿰뜷어 고정시켰다는 것을.

 

 

살벌한 우연이였다. 더이상 지탱할 필요가 없었다. 키루지마의 양손이 비었다.

유후코는 이름을 읊기 시작했다. 남편의 이름을. 아이의 이름을. 그리고 속삭였다.

'고우랑가' 라고.

 

 

"죽어라! 닌자 슬레이어=상! 죽어!" 코카트리스는 군중을 흩트리며 도약하여, 질주하고, 그 기세를 몰아 치사성의 맹독으로 뒤덮은 오른손으로 관수를 발하려 하고 있었다.

닌자 슬레이어도 코카트리스를 향해 일직선으로 달렸다. 자신의 정중선을 따라 도신을 적에게 겨누고, 방패처럼 얼굴 앞에 내걸어, 유후코에게서 떼어 놓은 왼손을 그 칼등에 거들면서.

 

 

두 닌자는 격돌했다, 일순간의 가라테가 교차하며, 그 기세로 서로의 후방으로 앞질러 나갔다.

 

 

...대체 이것은 어디서 유래된 이형의 검술이란 말인가.

달구어진 칼날은 코카트리스의 중지에 닿아, 그대로 한 치의 오차도 없이 곧게 손가락의 뿌리로, 손목으로, 그리고 팔꿈치로, 어깻죽지로 파고들어 맹독을 머금은 오른팔을 그대로 두동강내고 있었다. 코카트리스의 오른팔은 선박에 부딪힌 파도처럼 좌우로 찢어지고, 그것들이 제각기 대패질당한 목재처럼 바깥으로 굽어선, 뿜어진 피안개 째로 검은 불꽃에 휩싸여, 닌자슬레이어에게 닿는 일 없이 그대로 연소했다.

 

 

"이, 이럴 수가!?" 코카트리스는 오른팔을 잃었다, 그대로 돌아보자 이미 닌자 슬레이어가 칼자루를 양손으로 쥐고 다다미 한장의 거리에서 어긋 안개자세를 취하고 있었다.

키루지마의 양 손은 한계까지 비틀려 있어, 칼자루에서 삐걱이는 소리가 들렸다. 그리고 발해졌다. 이는 참격이 아니라, 닌자 동체시력으로 잡을 수 없는 지근거리의 찌르기였다.

 

 

"키리스테!"

 

 

불게 달구어진 칼날이 코카트리스의 심장에 꽂히어, 견갑골을 으깨며 등으로 빠져나왔다. "끄악-!"

 

 

"고멘!"

 

 

키루지마는 칼을 왼손으로 거든 체 그대로 오른손으로 칼자루를 한바퀴 돌려, 리얼닌자의 독의 근원지인 심장을 믹서처럼 파쇄하여, 차마 말로 표현할 수 없는 격통을 가하였다.

 

 

수 초 동안, 시간이 멈춘 것 처럼 검붉은 낙오무사와 리얼닌자가 태양 아래서 서로 마주보았다.

이윽고 코카트리스는 경련하고, 멘포에서 피를 흘리며, 땅바닥으로 무너졌다.

 

 

"......지옥에나 떨어져" 유후코가 반신을 내려다보며 매도했다.

"모, 모탈, 년, 이.....!" 코카트리스는 반격하려고 했지만, 이미 그의 가라테는 다했다. "쿠훕-!" 그는 멘포 속에서 토혈했다.

 

 

"하이쿠를 읊어라, 코카트리스=상" "영업조합에게......두령님께, 영광 있으라!"

최후의 하이쿠를 외치며, 코카트리스는 공포로 얼굴을 일그러뜨리며 폭발사산했다, 효수된 목이 멀리 튀었다. "사요나라!"

 

 

유후코는 키루지마가 승리했음을 깨닫자, 온화한 미소를 띄우며 남편과 아이의 이름을 다시 부른 뒤, 허공을 향해 손을 뻗었다.

그대로 그녀는 닌자 슬레이어의 검은 불꽃 속에서 완전히 불타고, 수백마리의 반딧불이떼를 방불케 하는 불티가 되어 흩어졌다.

 

 

닌자 슬레이어는 잔신 후, 한쪽 무릎을 끓고, 두번째 목을 검붉은 보자기에 넣었다. 나라쿠의 힘을 단기간동안 혹사시킨 반동으로 인해

'닌'자를 '살'해함을 표하는 강철멘포가 사라져 갔다. 이후 남은 것은, 머리에 붕대를 두른 만신창이의 낙오무사 뿐이다.

붕대를 묶어준 약사는 이제 이승에는 없었다.

 

 

"""죽어라!"""

 

 

사악한 닌자는 물리쳤다.

 

 

""" 죽어라! """

 

 

그러나 아시가루와 조닌들은 멈추지 않았다.

 

 

""" 죽어라! """

 

 

조정과 요쓰야노쿠니의 명예를 위해, 혹은 쌀 스무 가마니를 위해, 광기에 물든 눈을 하고 낙오무사를 향해 몰려들었다.

 

 

""" 죽어라! """

 

 

입가에 거품을 물고, 낙오무사와 유후코의 소행을 욕하면서. 화살과 칼, 창과 낫. 악의에 가득 찬 무수한 얼굴.

키루지마의 머릿속에서 일절의 소리가 사라져, 그의 시야가 붉게 물들었다.

 

살육이 시작되었다. 건조한 하늘 한가운데 태양이 미칠듯이 빛나고 있었다.

 

 

◆◆◆◆◆◆◆◆

 

 

오미노로시는 죽음의 땅으로 변해 있었다. 거리엔 땀에 피, 창자와 배설물의 악취가 가득 차 있었다.

아시가루는 마지막 한명까지 참살당해, 탁한 눈의 노인도 퇴역 로닌도 야쿠자도 전투오이란도 모두 시체가 되서 산을 이루듯 쌓여있었다.

무력한 부녀자들의 시체는 없다. 이미 이 마을을 버리고 도망친 것이리라.

 

 

키루지마의 허리에 매달린건 두 개의 검붉은 보자기, 그가 바라는 것은 백명의 닌자의 수급, 바라는 것은 죽어가는 그들의 입에서 짜내어질 백가지의 데스 하이쿠.

 

 

아직도 부족하다. 피폐한 키루지마는 깨진 지장의 위에 앉아 지면에 꽂아 둔 칼에 기대며 시체의 산에서 흘러내리는 시꺼먼 피를 지켜봤다.

피는 천천히 땅을 적시며 개미들을 익사시켰다. 그 피는 아직도 붉게 달구어져 있는 칼날의 표면에 닿아 검붉은 증기와 악취를 낳고 있었다.

그의 짚신에도 피가 적셨다. 이후 수시간이 경과했지만. 키루지마는 여전히 숨을 가누고 있었다.

 

 

이윽고 해골같은 석양을 등지며 세 발 달린 이형의 까마귀가 내려앉아 시체의 산 위에서 시끄럽게 울었다.

그 울음소리를 평범한 자가 듣는다면 너무나도 불길한 나머지 등을 돌리고 서둘러 오던 길로 돌아갔으리라, 허나 닌자 슬레이어에게 돌아갈 길 따윈 없다.

그리고 그의 귀에는 그 까마귀의 울음소리가 사람의 말소리로써 들리고 있었다. [또 모조리 죽인거냐?] 까마귀는 어이가 없는 듯 말했다.

 

 

키루지마는 까마귀를 보며, 결국 자신은 완전히 미쳐버린 모양이라 몽롱한 의식 속에서 생각했다. 단지 미쳐서 깨지 못할 악몽을 꾸고 있을 뿐이라면 얼마나 좋았으랴.

허나 키루지마 자신도 알고 있었다. 이건 악몽도 환각도 아니라고. 그 날 자신은 한 번 죽어, 닌자로써 부활한 것이라고.

(((죽이거라, 키루지마여.......! 죽이는 게다...! 이놈도 역시 닌자다....! ))) 나라쿠의 목소리가 머릿 속에서 울리며, 키루지마를 몰아붙였다.

 

 

키루지마는 바란다면 언제든지 팔을 한번 휘둘러서 강철의 별을 투척해 그 까마귀를 살해했을 것이다.

허나 그는 미동조차 하지않고, 깨진 지장 위에 앉은 채 지긋이 까마귀를 지켜봤다.

몽롱한 의식과 시계와 기억이 차차 돌아오고 있었다. 자신은 아직 완전히 미치진 않았다. 이 까마귀도 닌자다. 그리고 그 남자의 하수인이다.

 

 

[이런 짓 계속 하다간, 편하게는 못 죽는다고] 까마귀는 말했다. "쓸데없는 소리 하지 마라, 까마귀" 키루지마는 위협했다.

"....가지고 가라" 그리고 보자기로 싼 닌자의 목 두개를 까마귀의 옆으로 던졌다.

 

 

"그것들을 마쓰오 바쇼(※)에게 보내라"

[※마쓰오 바쇼 : 에도시대의 하이쿠 시인. 시성(俳聖 : 하이쿠의 성인)이라고까지 불리는 대단히 고명한 인물이다.]

 

 

[하이눈, 닌자, 노마드] 終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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다이하드 테일즈 번역 가이드라인 (https://diehardtales.com/n/n96e186db18ff)

 

본 번역은 공식 번역이 아니며 영리적 목적이 일절 없다. 알겠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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posted by 개버개버